열등감과 콤플렉스, 과도한 자의식.
나의 죽어버린 삶. 

   타자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사라진 세상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릇된 무분별한 의심으로 타자를 바라보고, 타자를 모함하는 인간. 그와 동시에 남과의 비교로 자신을 비하하고, 지나친 열등감 속에 살아가는 인간.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타자로부터의 열등감’에서 출발하는 이 비극은 자신을 향한 방어기제로서 과도한 자기애와 허영심으로 이어지며, 끊임없는 타자의 시선으로부터의 구속과 강박으로 이어진다. 타자를 제멋대로 경계하고 불신하며, 동시에 홀로 자신만의 난폭한 생각을 키워가며 끝내 자기 자신을 끝없이 학대하고마는 슬픈 풍경. 자기 자신이 아닌, 외면적인 조건과 타자로부터 자기의 존재감을 획득하는 이가 가지는 하나의 비애일지도 모르겠다. 여기 그런 한 사람이 있다. 

   작품 속 화자는 이십대 때, 스스로를 끊임없이 변명과 합리화, 정당화하며 자신를 설득시키고 자신만의 몽상을 키워가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자존심을 내세우며, 자신의 체면과 허영을 위해 타자에게 불필요하게 광분하고, 무분별하게 타자를 증오하기도 한다. 그런 자신이 어리석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어리석음을 고집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의 이십대는 자기만의 열등감에 사로잡혀 자신을 학대함과 동시에, 자신만의 과도한 자의식 속에 갇혀 타자를 무시하며 살아가는 순간들이기도 했다.

   열등감과 콤플렉스. 타자와의 사회적, 경제적 조건을 비교함으로써 자신을 위축시키는 ‘열등감과 콤플렉스가 사람을 망가뜨린다’는 것을 작품 속 화자는 보여주고 있다. 자발적으로 타자의 시선을 검열하고, 스스로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의 부족한 부분에만 집중해, 자기만의 지하 속에서 자신을 학대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자의식을 과하게 키워나가면서, 다른 타자로부터 비교우위 선상에 서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자신이 누군가보다 우월하다는 자의식으로부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고 싶은 것일까. 타자를 가르치려들고 타자 위에 군림하려 드는 그의 모습 속에서 더욱 안타까운 점은 자기보다 사회경제적 조건이 못하다고 생각되는 약자를 하대하며. 자신의 열등감을 해소하려 한다는 점이다.

    무엇 하나를 안다는 사실에 매몰되어 다른 누군가를 함부로 계몽하려는 자세, 사실 계몽보다 무서운 말은 없으리라. 내가 가진 하나의 답을 보편화하여, 타자에게 절대적 진리인 양 강요하는 듯한 말과 생각. 내가 무언가를 다 안다는 착각과 오만에 빠져, 자신과는 다른 삶의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누군가를 경멸하고 낮추어보는 시선. 그와 동시에 타자의 선망적 시선과 관심을 받고 싶어하면서도 누군가를 낮추어보는 태도. 타자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으로부터 자신의 존재감을 획득하려는 이 태도는 끝내 그를 망가뜨리고, 약자를 더욱 괴롭히게 된다.   

   어쩌면 사람은 열등감과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돈과 명예와 같은 외면적인 것들에 대한 집착과, 타자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검열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운 지도 모르겠다. 열등감에 빠져 사는 일은 자기학대일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 타자에게 폭력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 소설 속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를 두고 ‘스스로를 인간이 아닌 생쥐로 여기는 인간’이라고 표현한다. 자기만의 지하, 자기만의 몽상 속에서, 자신을 타자와 비교하며 스스로의 존재를 가치절하시키는 사람. 열등감에 사로잡혀 자신을 인간이 아닌 생쥐로 비하하고, 과도한 자의식에 사로잡혀 타자를 인간이 아닌 생쥐 쯤으로 비하해버리는 사람. 그렇게 자신의 삶과 타자의 삶을 죽여버리는 존재. 혹시 나도 그런 사람은 아닐까. 내 안에도 그런 ‘열등감과 콤플렉스, 과도한 자의식’이 나를 옭아매고 있는 것은 아닌 깊이 물어볼 일이다.   

   그는 스스로를 두고 “나는 아픈 인간이다.”라고 표현했다. 사실 나 역시도 아픈 인간이다. 열등감과 콤플렉스, 과도한 자의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아픈 인간이다. 여전히 타자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누군가의 시선과 생각의 틀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내 안의 부족한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를 외면한 채로, 타자 앞에서 내 안의 부족한 점을 감추기에 급급하며 살아왔다. 돌아보면 그런 내 모습은 내가 나 스스로를 학대하는 일과 같았다. 내가 나를 돌봐주지는 못할지언정 나를 남들과 비교하여 하대하고, 타자 앞에서 나 자신을 위축시켜 온 것이다. 남들이 무어라 하지 않아도, 나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나를 스스로 구속하고 괴롭혀온 것이다. 결국 나를 진짜 괴롭혀 온 사람은 나였고, 타자를 끊임없이 신경쓰는 내 의식이었다.

   작품 속의 화자의 모습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일은 그리 유쾌하기만 한 일은 아니다. 특히 그것이 나의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낼 때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나는 이번을 계기로 내 안의 부족한 모습을 스스로 진지하게 끌어안아 보려고 한다. 그런 내 모습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이에 크게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하려 한다. 타자와의 비교 속에서 나다움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와 나만의 고유한 삶 안에서 내 존재의 가치를 발견하려 한다. 내가 가져왔던 열등감과 콤플렉스를 나 스스로 희극화할 수 있을 때가지, 나의 존재 그 자체를 더욱 끌어안고 돌보리라. 

   열등감과 콤플렉스가, 지나친 자의식이 나와 내 주위의 다른 이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에 대해 궁금한 사람은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읽어봐도 참 좋겠다. 그의 모습 속에서 나처럼, 당신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에게도 ‘당신을 구속하는 열등감과 콤플렉스, 과도한 자의식’이 있다면, 우리 함께 이에 정면으로 마주해보자. 그리고 받아들여보자. 내 안의 부족하다고 여겨왔던 모습을 끌어안아보자. 나를 구속하는 내 안의 시선과 생각으로부터 해방되어, 나만의 살아있는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