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의 후예』

 

무엇이 그들을 카인의 후예로 만들었는가.

   사람은 그가 처한 환경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 선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악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그가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사람은 늘 똑같은 선택만을 하는 불변의 기계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하고 달라지는 살아있는 존재이다. 사람을 함부로 이기적인 인간, 이타적인 인간이라고 일반화하거나 하고 싶은 인간의 섣부른 마음이, 끝내 인간과 세상을 함부로 왜곡하여 바라보도록 만드는 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선하기만 하고, 악하기만 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환경과 상황에 따라, 인간의 선택과 언행은 달라진다. 언제나 우리는 사람의 부분만을 바라볼 뿐이다. 내가 바라보고 싶은 그 부분만.

   해방 이후 6·25이전, 북한에서는 지주의 토지를 몰수하는 토지개혁이 이루어졌다. 해방과 분단, 토지개혁이라는 급격한 사회적 변화가 이루어지던 시기에, 사람들은 저마다 살아가던 모습을 달리했고, 그 속에서 발생되는 갈등 역시 커졌다. 그동안 바르게 마음을 쓸 줄 알며 살아왔던 훈이는, 해방을 맞고 토지개혁이 이루어지는 상황 속에서 그 모습을 달리한다. 자신이 믿고 신뢰하던 삼득이 마저 속으로 의심하며, 도섭영감을 직접 죽이려하는 훈이의 모습은, 시대적·사회적 상황이라는 환경이, 한 사람을 어떻게 변하게 만드는가에 대한 질문을 깊이 남긴다.

   인류 최초의 살인자, 카인. 카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살인자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카인을 살인자로 만들었는가. 카인은 어떤 상황 속에서 어떤 연유로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는가. 나는 그 물음을 안고, 『카인의 후예』를 마주했다. 카인이라는 비유를 통해, 나는 해방 후 토지개혁과정에서 비인간화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분단과 분열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토지개혁이라는 사회적 상황 속에서 생기는 갈등과 변해가는 사람들의 모습. 무엇이 이들을 카인의 후예로 만들었는가. 분단과 분열, 토지개혁이라는 사회적 상황과 환경이 사람들을 보다 무서운 모습으로 변하게 할 수도 있다는 쓰라린 아픔과 경고가 『카인의 후예』에 담겨있다.

   오늘날 비인간화를 심화시키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탄생하는 수많은 카인의 후예들을 생각한다. 인간은 이기적이다라고 단정짓는 자본주의 사회의 왜곡된 강령은, 우리가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그릇된 믿음과 회의를 가지도록 이끈다. 하지만 인간은 이타적이기도 하다. 경쟁을 통해 소수의 승자를 가리는 게임의 법칙이 자리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 안의 이기적인 모습이 더욱 잘 발현될 수 있도록 인간을 추동할 뿐이다. 인간이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을 더욱 이기적 모습으로 만드는 자본주의 사회의 자기합리화나 정당화 같은 것이랄까.

   나는 황순원 선생님께서 타고난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란 없음을’ 이야기하시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해보았다. 언제나 선하고, 악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선함과 악함마저 모두 자기의 기준 아래서의 판단일 뿐이지 않은가. 모두 같은 인간이며,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거늘. 다만 무엇이 우리 안에 공존하는 선·악을 부추기는지, 무엇이 우리 안의 악한 모습과 선함 모습을 유발시키는지에 대해 말씀하시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 요인이 외부적 요인이든 내부적 요인이든 간에. 물론 같은 환경 속에서도 인간은 다른 선택을 하는 법이다. 하지만 환경이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언제나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한(韓) 민족에게 일제강점은, 해방 후의 분단은 참으로 큰 아픔이다.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이해관계와 이권 아래, 함께 살아가던 사람들은 서로 분열되었다. 더불어 오랜 세월 공고하게 자리잡은 권력계급에 의해 착취와 차별을 받아야만 했던 우리의 신분제와, 지주와 소작농으로 나뉘어 살아가야만 했던 운명의 사람들 역시 참으로 큰 아픔이다.지난 세월 속에서 저 마다의 가슴속에 쌓여왔던 울분과 억울함, 고통과 슬픔, 미안함과 죄책감들은 급격하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폭팔하게 되는 것일까. 그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더욱 미워하게 되고, 불신하게 되며, 고립되고 만다. 무엇이 우리의 인간다움을 해치는가. 무엇이 우리의 인간다운 삶을 위협하는가.  무엇이 우리의 분노를 자극하고, 무엇이 인간을 향한 우리의 불신을 자극하는가. 무엇이 우리 안의 그릇된 욕망을 자극하는가.

   나는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여, 사람다운 길의 분별을 잃도록 만드는 사회 환경이 참으로 두렵다. 일제강점 당시 친일에 붙어먹어 이권을 누리려는 욕망의 충동이나, 토지개혁 속에서 일어나는 이권을 노려보겠다며 인간의 욕망에 사로잡혀 분별을 잃는 충동이나,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소비나 소유의 노예를 자처하는 욕망의 충동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것은, 그 그릇된 욕망의 충동이 우리의 삶과,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을 위협한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다시 한 번 카인을 생각한다. 동생인 아벨을 향한 카인의 질투와 폭력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자신의 동생마저 죽일 만큼의 강한 분노는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가. 나는 성경 속에서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성경 속에서 카인은 아벨과 달리 하느님께 자신의 제물이 선택받지 못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나는 여기에서 카인의 차별당하는 서러움과 무시 그리고 선택받지 못하는아픔에 대해 주목해보고 싶다.

    사람에게 이유 모를 차별과 무시 그리고 관심 받지 못하는 것은 큰 상처가 된다. 이는 한 사람의 자존감을 위협하고, 사람을 의기소침해지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하며, 다시 또 그러한 상처를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도 생기게 만든다. 타인을 향한 마음의 문이 닫히고 마는 것이다.

   카인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자신과는 달리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아벨에게 질투가 났던 것은 아닐까. 시기심에 불타올라, 그만 분별을 잃은 것은 아닐까.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일 만큼, 그의 분별을 잃게 한 것은 무관심과 인정받지 못하는안타까움이었다. 그 외면 받아 상처입은 마음 속에서 보다 악한 생각이 퍼져나간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카인이 그런 차별과 선택받지 못했던 그 내막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나는 관계 속에서 상처입은 한 사람의 마음에 집중해보고 싶다.

   사랑을 받아온 사람, 자기에 대한 자존감이 충분한 사람은 ‘상처를 긍정하고 이를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 자력’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회의와 분노로 ‘상처’를 마주하기 마련이다. 잘난 사람들은 때때로 못난 타자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을 때가 많다. “나는 이렇게 하는데, 왜 ‘너’는 그렇게 밖에 못하니.”라는 타자에 대한 섣부른 판단과 자신만의 높은 기준을 타자에게 강요하곤 한다. 타자가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내막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면서 말이다.

   만약 상처입은 카인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주며, 진솔한 마음으로 카인에게 다가간 이가 있었더라면, 과연 카인이 폭력과 살인을 저질렀을까. 분단과 분열이라는 시대적상황과 더불어, 토지개혁과 같이 자신을 탐욕과 이기심에 빠지게 하는 환경적 요소  또 다른 카인의 후예를 만들기도 하지만, 나는 일상 속에서 우리도 무관심과 무시, 타자를 향한 섣부른 판단과 낙인으로, 다른 이를 또 다른 카인의 후예로 만들 수 있음을 생각한다. 우리는 상처를 받는 인간이고, 상처를 주는 인간이며, 언제든 카인의 후예가 될 수 있는 존재이자, 언제든 카인의 후예를 만들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무엇보다 타인을 향한 오늘 나 자신의 모습을 진정으로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나 또한 다른 이를 섣부르게 판단하거나, 나만을 생각하느라 내 눈 앞에 타자를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내 눈 앞에서 고통받고 있는 한 사람을 바라보지 못하고,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작은 언행으로 타자에게 ‘냉소와 무시’로 함께 하거나, 그런 식으로 한 사람을 바라보지는 않았는지. 내 눈 앞의 한 사람을 존중하지 않거나, 차별하지 않았는지. 오직 내 것만을 고집하느라, 타자의 몫을 잊지는 않았는지. 나의 가난하고 좁은 마음으로 타자를 질투하고 시기하지는 않았는지’.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부조리한 언행으로 타인에게는 큰 상처를 남길 수 있음을,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 자신 역시 그러한 경험을 통해, 상처를 받고 마음이 다치지 않았던가.

   나의 말과 행동 그리고 생각이, 함께 살아가는 이웃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 자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 삶이 곧 누군가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상대방을 폭력적으로, 관용적으로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 사람의 냉소에서 그의 지난 상처를 떠올릴 수 있었으면 한다.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사는 상처 입은 사람들의 영혼에, 나의 작은 미소가 가닿았으면 좋겠다. 살아가며 상처를 선물하기보다, 사랑을 나눌 줄 알았으면 좋겠다. 가볍게 건넨 ‘인사’가 때론 누군가에게 굉장히 큰 힘이 될 때가 있다. 한 사람을 향한 진솔한 사랑의 말, 이해의 말, 믿음의 말, 격려의 말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 한 인격에 대한 존중과 믿음, 작은 관심과 인정으로 한 사람을 마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른 한 사람에게 그렇게 사람 대 사람으로서 진솔하고도 진실한 만남을 이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일제강점과 해방 이후,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욕망하는 인간을 바라본다. 그 무분별한 욕망의 추구가 오늘날 나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이웃,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을 어떻게 망가뜨리고 있는지를 생각한다. 무엇이 우리의 인간다운 삶을 위협하는가. 어떤 욕망에의 충동이, 우리의 삶과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을 위협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여전히 카인의 후예로 만드는가. 오늘날 나의 삶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이름 모를 또 다른 카인의 후예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돌아볼 일이다.

 

작품 속에서 그려지는 인물묘사

 

1. 도섭영감

   도섭영감은 오작녀의 아버지로서, 20여 년 동안 훈이네 토지를 관리해온 마름이다. 훈이네 아버지께 충실하던 마름이었지만 헌데, 토지개혁을 앞두고, 모든 행동이 달라진 인물이다.

   [1.1] p39 이런 도섭영감이 훈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누구보다도 서러워했다. 아들인 훈 자신보다도 더 서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자기를 알아주던 사람이 이제는 이 세상에 없다는 데서 오는 슬픔인지도 몰랐다. 늙은 사내가 이처럼 목을 놓아 슬피우는 것을 훈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본적이 없었다.

   [1.2]  p45 교사(훈이) 어르신네는 한번 믿구 일을 맽긴 이상에는 그 사람이 자소 잘못하는 일이 있어두 눈감아주는 수밖에 없다는 말을 했다는군.

   ; 자신을 믿어주는 어른을 잃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은 굳이 누군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안다. 그러한 부족한 자신마저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훈이네 아버지를 향한 고마움과 감사함 그리고 그러한 분을 잃은 슬픔이 드러난 대목이 아닐까.

 

2. 훈이

 훈은 야학을 운영해오던 교사이자, 아버지로부터 마을에서 제일가는 땅을 물려받은 지주이기도 하다. 오작교를 속으로만 연모하며, 올바르게 살아가지만 부정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싹튼 불신 등으로 신뢰하던 삼득이를 의심하기도 하고, 도섭영감을 죽이려고 마음까지 먹기도 한다.

 

 기존의 훈의 마음씀씀이.

    [2.1] p57 훈이 고향에 돌아온 이듬해 봄에 얼마의 논을 자작한 일이 있었다. 자기 앞 공출량도 제대로 못 감당해나가는 소작인들한테 식량을 의탁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훈이 처음으로 모판을 만들어 보았다. 모내기도 해보았다. 밤늦게까지 물꼬도 지켜보았다. 어느 것 하나 뼛골이 빠지지 않는 일이 없었다. (…) 삼득이와 오작녀가 없었던들 농사는 지어지지 못했을 것이었다.

   [2.2] p93 훈은, 칠성이 어머니가 오죽하면 그 놋대접을 훔쳐가려 했을까 싶어, 차라리 그걸 모르는 체했던 편이 나았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삼득이를 신뢰하기로 마음먹은 훈.

    [2.3] p59 (추수 후 공출이 소출보다 많아, 훈이네는 미납된 공출이 많았다. 훈이 대신 열일곱살 삼득이가 스스로 주재소로 가서 사흘 동안이나 제 발로 바깥출입을 못할 만큼 쇠몽둥이로 맞았다. 훈은 우물물에 숨겨 놓았던 벼를 절구에 찧어먹으며)

   이 삼득이의 일을 생각하고는 목이 메곤 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날의 자기 아버지가 삼득이 아버지에게 대한 이상으로 자기도 앞으로 이 삼득이를 대하리라 마음억었다.

 

 하지만, 토지개혁이후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사람들을 향한 불신으로, 삼득이를 의심하기 시작하는 훈.

   [2.4] p56-57 삼득이가 대체 무슨일로 자기의 뒤를 밟은 것일까. 이즈음 와서 변해가는 사람들의 심정에 부닥칠 때마다 느껴지는 그 어떤 설움보다도 더 짙은 무엇이 가슴을 내리눌렀다.

   [2.5] p211 훈은, 이놈이 오늘은 또 무슨 염탐질을 하러 왔나 하는 생각이 들어 불쾌했다. 그렇지만 지금 자기로서는 관을 묏자리까지 맞잡아 올릴 수가 없을 것 같아 삼득이 하는 대로 내맡기고 말았다. (…) 훈은 어쩐지 이 삼득이의 손으로 묏자리가 파진다는 데 언짢은 생각이 들었다.

 

 시대적 상황이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변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훈

   [2.6] p64 훈은 지금 이 일대의 밭이 모두 논으로 변하고, 그때의 검정참외의 빛깔과 맛이 변한 것처럼, 그동안 사람의 생활과 감정도 변했다는 걸 말하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2.7]  p74 훈은 훈대로 이 윤주사의 흥분과는 달리 가슴을 끓게 하는 게 있었다. 그것은 아직 나라도 서기 전에 토지개혁을 한다는 건 민족을 분열시키는 시초라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과는 달리 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훈

   [2.8] p227 훈은 자기 자신이 내일이면 이미 오늘의 자기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조금도 부자연스럽지가 않은 것이었다. 

   [2.9] p232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어릴 적 돌 사진이었다. 성냥을 그어 불을 붙였다. 순식간에 다 타버렸다. 훈은 이것으로 자기의 모습은 이 세상에 하나 남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무척 깨끗해지는 심사였다.

 

 훈의 마음이 변한 모습의 절정.

    [2.10] p223 홀연 훈은 깨달아지는 게 있었다. 도섭영감을 없애버려야 할 사람은 사촌동생이 아니고 바로 자기가 아니냐. 나다. 내가 없애야한다, 내가 없애야 한다!

   [2.11]  p250 (도섭영감을 죽이겠다는 혁이에게 남긴 쪽지)  ‘내가 대신해서 도섭영감의 일을 처리한다. 어서 이곳을 떠나라. 이 이상 더 피를 보고 싶지 않다.’

 

3. 오작녀와 삼득이

   오작녀와 삼득이는 도섭영감의 딸과 아들로서, 지주였던 훈을 보필하는 두 남매다. 오작녀는 비극적인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의 힘을 보여주고 있고, 삼득이 또한 그러한 상황 아래에서도, 자신의 옳은 신념을 지킬 줄 알고 훈을 보살피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다.

   [3.1] p249 “(삼득이) 이른 일이 있을 것 같애서 늘상 마음을 못 놓구 뒤따라댕겼는데… 오늘은 선생님이 과수원에 계신 걸 보구 새하레 갔다 오는 새에 그만…” 훈은 새로이 눈앞이 핑 도는 심사였다. 삼득이가 여태껏 자기의 뒤를 밟은 것은 무슨 염탐질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자기의 신변을 보살펴주기 위함이었던가.

 “사실은 선생님더러 어서 여겔 떠나시라구 하구 싶었디만… 누이가 불쌍해서…” (…)  “그리구 불쌍한 누이를 대리구 가주십쇼.”

 

4. 혁이

   혁이는 훈이의 사촌동생으로서, 책의 후반부에서 ‘도섭영감이 변해가는 모습’에 대한 언지를 주고 있다. 

   [4.1]  p218-219 “말하자믄 도섭넝감은 제 생명의 은인이디요. 커갈수록 이 생각은 더해데요. 사실 그때 도섭 넝감이 아니었으믄 전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겝니다.”

    “그런 도섭 넝감이 요즘 하는 짓은 그게 뭐야요? 하기는 해방 전에두 이 도섭넝감이 한두 번 아니게 형님네 소작인들한테 몹쓸게 구는 걸 내 눈으루 봤이요.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이 도섭 넝감이 잘못하는 데두 있디만 그만큼 상대편에두 잘못이 있을 거라구 생각하군 했디요. 결국 나는 도섭넝감이 좀 미욱스런데는 있어두 악한 사람은 아니라구 생각하구 있었이요.” (…)

  “그런데 말이야요, 이 도섭넝감이 농민위원당이 된 것두 세월 탓이라 해두구, 비석을 깨부신 것두 자기가 살기 위해 한 짓이라구 합시다. 그러나 그저께 밤의 짓만은 도데히 사람 가죽을 쓰고 하디 못할 짓이 아니야요? 

   직접 사람을 쥑이는 것보다두 더한 짓이디요. 어제 산에 혼자 남아서두 생각해보구, 밤에두 자디 않구 생각해봤이요. 그러믄서 속으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아부지를 잃었을 때와는 또 달리 슬프기 한량없었이요.”

  “아무래두 요즘 도섭넝감이 미촀다구밖에 생각되지 않아요. 이제 아주 미치게 되믄 무슨 짓을 할는디두 몰라요. 그래 난 이 도섭넝감이 아주 미치기 전에 없애버리는 게 옳다구 생각했이요. 그게 생명의 은인에게 대한 보답일 것만 같애요.”

 

 5. 그 외

   [5.1] 소녀시절에는 잘 웃기로 유명하던 오작녀의 어머니가, 도섭영감이라는 남편 아래에서 웃음을 잃고, 그늘진 얼굴로 살아가는 모습

   [5.2] 토지개혁 소리가 나온 이후, 훈이를 외면하는 이해타산적인 도섭영감의 모습

   [5.3] 사람들이 ‘오작녀 남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모습을 보며, 자신 또한 예전 같이 그를 대할 수 없었던 불출이 어머니.

   [5.4] 윤주사가 피를 흘리고 있어도, 끝내 손목을 비틀으며 전대를 빼앗고 사라져 버리는 두 사내.

   [5.5] 토지개혁 과정의 지주 숙청에서, 목을 매어 자살한 분디나뭇집 할머니.

   [5.6] 그러한 할머니가 숙청당하고, 돌아가신 모습을 보고도 ‘큰 일을 하는데 생기는 어쩔 수 없는 자잘한 작은 일’들로 합리화하고 사람들을 선동하는 ‘당’ 청년.

   [5.7] 이용가치가 없어진 도섭영감을 후에, 숙청하려드는 ‘당’

   [5.8] 농민을 이용하여, 농민의 의사에 의해 행해지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이간질을 하고 사람들을 계락에 빠트린 ‘당’

 

6. 기타 

   [6.1]  p99 (당손이 할아버지가 당손이를 때리다가)  “이번에는 내 차례다!”  “데리 물러가서 이 핸애비의 매 맞는 꼴을 자세히 봐라! 왜 그런디 난 이 매가 도무디 아프지 않구나! 이 저리구 아픈 가슴에 비하믄… 에익, 에익…”   p102 늙은이의 정강이에 피가 나 있는 게 보였다. 두 정강이가 온통 붉고 푸르게 부르터 있었다.

   ; 사랑의 매’, 때리는 사람의 아픔과 고통이 맞는 사람의 그것보다 더 큰 것일 때, 진정 사랑의 매가 될 수 있다는 그 마음. 그 마음이 할아버지에게서 느껴진다.

 

   [6.2]  p153 (우물가의 여인들)  “난 백번 죽었다 폐두 그 엠나이터름은 못하갔다. 글쎼 본남편이 있는 년이 그게 무슨 디랄이람, 수많은 사람 앞에서… 하늘이 무섭디두 않은 게디.. 하긴 벌ㅆ 오래됐대. 둘이 붙은게.”

 “젊은 남네가 3년씨기나 한집에 살믄 탈두 나는 법이디.” “이번에 앓아누웠든 것두 사실은 딴 병이 아니구 입덧을 몹시해서 그랬대요.

 “그래 오늘 아츰에 왔을 때 유심히 봤드니 정말 몸놀림이 다르디 않갔이요?칠설이 어머니도 이 새로 듣는 소문에 신이 나 머리에 올려놓았던 똬리까리 내려쥐며, “난 또 젠넨 너름에 벌써 그르티 않나 했디. 그 집 우물물이 차다구 해서 목물을 얹으레 갔는데 말이야, 내가 한차례 얹구 그년을 얹어주는데 가만히 허리띠 새루 보니낀 젖꼭지 빛깔이 다르디 않갔어? 그래 수상하다구 생각한 적이 있었디.”

   ; 위의 말에서는 모든 말이 왜곡되었다. 상황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왜곡하고 맞장구치며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사람들. 나 역시 그러한 사람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자신이 직접 보고 듣는 것만 말하는 자세와 더불어, 자신이 그러한 보고 들은 것 마저 잘못 이해한 것일 수도 있음을 함께 생각하는 자세가 중요하지 않을까.

 

   [6.3] p161 훈은 비로소 이 사내가 오늘 자기를 찾아온 뜻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어 돈을 청구하려는 건 아니다. 그저 이 사내는 지금 이 사내대로 마음의 괴로움이 있는 것이다. 아내를 잃은 남편의 처지인 데다가 또 여편네를 돈에 팔았다는 터무니없는 소문까지 난 것이었다. 그 울적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기 위해서 이렇게 자기를 찾아온 것임에 틀림없었다. 이런 사내의 심정을 훈은 넉넉히 알 수 있었다.

   ; 나는 내 눈 앞의 한 사람의 온전히 헤아리고 있는지, 나를 만나러 오기 전에,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요즈음 힘든 일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보다 더 힘들어 하는 친구 앞에서, 오히려 가벼운 일로 넋두리를 늘어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6.4] p104 (훈이 자신의 첫돌 사진을 보며) 어딘가 귀여웠다. 이 귀여운 어린애가 아무래도 지금의 자기가 아닌 것만 같았다.

   ; 나도 가끔 옛날 나의 어린 모습의 사진을 볼 때면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이렇게 다양했던 표정을 잃은 것은 아닌지, 보다 더 아름다웠던 내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변해가는 인간의 마음과 언행을 기억하며, 진실로 나를 돌아보고, 더 깨어있는 오늘을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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