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히로시마 평화축제

   히로시마 평화축제. 히로시마에 원폭이 터졌던 8월 6일은 아니었지만, 그 전날인 5일에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했다. 일본인과 한국인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나라의 외국인들이 원폭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평화기념공원으로 찾아온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절로 밝아왔다. 과거 제국주의적 욕망에 희생된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을 기억하고, 무고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위한 깊은 애도. 나는 엄숙한 마음으로 애도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나만의 작은 희망을 가슴에 품었다. 지구의 다른 어딘가에 살아가는 세계 시민들이 과거인류의 상흔이 남은 곳에서, 함께 평화를 지향하는 마음으로, 애도의 마음으로 함께 하고 있다고. 평화를 향해 저마다의 작은 마음들을 함께 모으고 있다고.

[원폭돔 사진]

   평화기념공원에 도착한 후, 제일 먼저 마주했던 것은 원폭돔이었다. 상공 약 600m위에서 터진 원폭과 그 아래의 원폭돔. 맑은 하늘을 자신의 것으로 품어버린 원폭돔은 아름다우면서 참으로 가슴 아픈 것이었다. 원폭돔 앞에 적힌 비문을 민곤이와 함께 읽으며 생각했다. 원폭돔을 교훈으로 삼아, 앞으로 참된 평화의 시대를 열어가야만 한다고. 제국주의와 자본의 논리에 의해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고. 평화를 위한 나만의 작은 고민과 행동을 이어가야만 한다고. 그리 작은 다짐을 했다.

   원폭 폭팔 이후 지표면의 열은 대략 3,000-4,000도에 달한다고 한다. 철이 녹는 온도는 1,500도라는 것을 생각해보았을 때, 그것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셨던 분들의 고통은 어떤 것이었을까. 원폭이 터진 후 일어난 폭풍이 초속 440m/s 라고 하는데, 대형태풍이 30-40m/s 정도 인 것을 생각해본다면, 그것은 얼마나 위협적으로 당시 마을 사람들을 덮쳤던 것일까. 당시 히로시마 시내 사셨던 35만 명 중 약 14만 명(약 9~16만명)이 원폭으로 돌아가셨다고 하니, 그 죽음의 무게가 오늘에 사는 나로서는 상상조차 쉽사리 되지 않는다. 그 이후 원폭 피폭자로 온갖 질병과 고통 속에서 지금까지 살아오신 분들이 일본 전국 내에서 약 219,410명(2011년 기준), 평균 연령 전국 77.44세라고 하니 더욱 가슴이 미어져왔다. 약 70년이 넘는 세월동안 피폭으로 인해 고생하셨을 분들과 고통 속에서 사셔야 했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그 고통은 차마 헤아릴 길이 없다.

[한국인 원폭피해자 위령비]

   원폭 투하로, 강제 징용되어 와 히로시마 살고 계셨던 조선인은 약 4만 명(히로시마 3만, 나가사키 1만)이 돌아가셨고, 약 7만 명의 조선인 분들이 피폭자로 삶을 살아가셔야만 했다고 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조선인 분들은 살아남기 위해, 원폭으로 인한 도시복구현장에서 맨몸으로 일하다가 더욱 방사능에 노출되었던 현실과, 그동안의 역대 정부가 그러한 피폭된 조선인분들을 외면하면서 살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참으로 마음이 무너진다. 나는 아이들과 조선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우리는 함께 접은 종이학을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에 걸고, 잠시 깊은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원폭 어린이 상과 종이학]


원폭 어린이 상과 종이학
, 그리고 물병

   원폭이 떨어진 이후, ‘사사키 사다코’라는 일본의 어린 아이는 피폭으로 백혈병 증상이 나타났을 때, 종이학 1,000마리를 접으면 병이 낫는다는 말을 믿고, 투병 중에 학을 접었지만, 끝내 세상을 떠났다.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 원폭으로 사망한 어린 아이들의 위령과 평화의 기원을 담아, 일본 전역과 해외로부터 모금을 받아 ‘원폭 어린이상’이 만들어졌다. 해마다 약 10톤의, 1,000만 마리의 종이학이 이곳으로 모인다고 한다. 저마다의 마음들이 모여, 함께 평화로 나아가는 큰 물줄기가 되기를.

   원폭 돔 위령비 앞 강가에는, 물병들이 놓여있다. 원폭 직후 생존한 사람들은 강 주변으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 때 원폭 부상자들이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물 좀 주세요’ 였다고 한다. 폭격 직후, 물은 곧 생명과도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가슴 아픈 사실은 엄청나게 뜨거운 열에 피폭된 사람들에게 물은 위험한 것이기도 했다고 한다. 위령비 앞 희생자를 위로하는 수많은 물병들. 전해지지 못한 물들과 그것을 곁에서 바라본 사람들. 먹먹한 가슴에 아무 말도,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평화기념 자료관에서 ‘당시 히로시마 시내에 가득 찼던 집들과, 모두 폐허로 변해버리는 대형 벽지’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어졌던 ‘원폭이 떨어지는 가상 시뮬레이션’. 원폭을 경험하지 못한 머리의 가냘픈 상상을 대신하여 가상으로 구성된 시뮬레이션은, 그것을 함께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아픔으로 다가왔다. 원폭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원폭으로 인한 고통이 수많은 죽음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까지도 그들의 삶을 얼마나 송두리째 흔들어버리는 것인지, 가족을 잃고 함께 더불어 살던 이웃을 잃고 살아야 했던 분들의 마음을 나는 헤아릴 길이 없다.

 

박남주 할머니의 피폭 증언,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슬픔.

   오후에는 히로시마 세계평화기념성당에서 박남주 할머니의 피폭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주최 측에서 배려를 해주신 덕분에, 할머니의 말씀을 통역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할머니께서 일본어로 말씀하셨지만, 그 떨려오는 음성과 마음은 나를 깊은 슬픔으로 뒤흔들었다. 세월호 1주기 때 팽목항에서 들었던 어버이의 음성과 닮은 깊은 아픔 이었다. 구슬픈 부르짖음, 구슬픈 나직임. 원폭이 터져 마을이 사라지고, ‘물을 달라, 뜨겁다’를 부르짖으며, 강가로 걸어오던 사람들. 할머니의 아츠이, 아츠이라는 음성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서려있었다. 원폭을 경험하신 박남주 할머니와 원폭을 경험하지 못한 나 사이의 간격은 참으로 먼 것이겠지만, 내 마음은 할머니의 슬픔을 온전히 상상할 수 없었기에 동시에 참으로 무력했고, 참담했다. “폭격기 공습경보가 사라진 기쁨, 저녁에 불을 켤 수 있다는 기쁨과 동시에 마주해야만 했던 것은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 물을 줄 수 없었던 아픔, 사라진 사람들을 기억하는 슬픔”과 “살기 위해 강가의 풀을 따다 먹는 사람들, 쑥으로 상처를 치료하는 사람들”의 광경이 할머니의 삶을 뒤흔드셨다고 했다.

   글이나 이야기로써, 역사적 사실을 안다는 일은 참으로 가냘픈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안다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이를 몸으로 경험하지 못한 사람의 앎은 언제나 가벼운 것이다. 누군가의 고통과 역사적 사실 앞에서 조금 더 사려 깊은 마음과 겸허함 마음으로 함께 할 수 있기를. 그 고통의 경험자, 피해자, 생존자의 육성과 마음에 귀 기울일 수 있기를. 그 어떤 행동보다도, 먼저 온전히 그 분들의 고통 앞에 내 마음이 온전히 머무르기를.

[평화행진과 평화합창]

 

평화행진과 평화를 기도하는 합창.

   ‘평화를 희망한다.’는 외침을 담은 피켓을 들고, 평화기념공원부터 세계평화기념성당까지 평화행진을 했다. 행진하는 중간에, 어린 시절 6살에 일본으로 오시게 된 어느 조선인 할머님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여기까지 와주어, 고맙다는 말씀에 우리의 마음은 밝아오면서도, 마음이 미어져왔다. 부디 우리의 작은 발걸음이, 평화의 불씨가 되기를. 부싯돌처럼 평화의 불꽃을 만들어내기를, 우리가 그러하기를. 평화행진이 끝나고 난 다음에, 세계평화기념성당 근처에서 원폭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평화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아이들과 함께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불렀다. 첫 소절을 떼던 호흡부터, 현장의 몰입감과 그 때의 공기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한 소절 한 소절에 배어난 우리 아이들의 마음과 목소리가 한일평화로 나아가는 참된 디딤돌이자, 진정한 마음의 연대로 이어지는 초석이 되기를 바랐다.

 

세계 시민들 간의 진정한 마음의 연대만이,
진정한 평화로 나아가는 길이 아닐까.

   나는 국제사회에서의 국가간의 외교는 참으로 슬픈 것이라 믿어왔다. 언제나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결정하는 냉엄한 국가논리 앞에서, 진정한 국가 간의 연대와 평화의 모색은 과연 가능한 것일까. 경제적 이익과 이해관계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일까. 자국의 이익을 위해 그동안 가져왔던 신뢰를 무너뜨리곤 하는 국제사회의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국가 정상 간의 외교’로는 다른 나라의 시민들과 진정한 연대가 어려울 것이라고. 어느 지도자가 자국과 타국에 있느냐에 따라, 경제적 실리와 이해관계에 따라, 국가 정상 간의 외교는 쉽게 모습을 달리하곤 하니까 말이다. 언제나 특정 정부의 이해관계에 따른 자국의 국익 앞에서, 타국과의 신의를 져 버릴 수 있는 가능성은 쉽게 예상가능한 일이기도 하니까. 때문에 나는 진정한 외교란, 각국의 시민들이 서로 마음과 마음이 이어진 연대가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한국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정서이나, 똑같이 일제 강점 때 우리와 같이 식민지였던 대만은 오늘날 일본과 시민들간 우호적인 감정으로 교류하며 살고 있다. 일본에서 지진이 날 때면, 대만의 거리 가게들에는 일본 힘내라는 메시지가 붙어있기도 하고, 구호자금을 보내는 노력이나 관심 역시 굉장히 높다. 나는 동아시아 내 진정한 평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동아시아 내 국가의 시민들끼리 진솔한 마음의 연대가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한 마음의 연대만이, 한 국가를 임시적으로 대표되는 한 정부의 경솔함을 너머, 참된 연대와 평화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라 믿는다.

   나는 이번 히로시마 평화축제의 참여가, 일본의 시민과 한국의 시민이 진정한 마음의 연대로 나아가는 작은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한 시민의 연대가 진정한 평화로 나아가는 길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서로의 구별을 잊고 평화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하나 되어, 더불어 살아가기를 바란다. 쉽지 않은 일이겠으나, 진솔한 마음이라면 조금씩 그러한 사람들이 늘어나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제국주의와 국가폭력으로부터 고통 받은 이들 앞에서, 진정한 애도와 마음의 연대. 우리만의 아픔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아픔에도 함께 발걸음을 멈추는 그 마음. 나는 이번 여정에서 그러한 참된 마음의 연대로 나아가는 또 다른 시작을 보았고, 진실된 마음의 연대로 나아가는 희망을 보았다.

[히로시마 원폭설명, 평화기념공원 지도 및 기념비 안내] 정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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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평화축제와 함께 생각해보면 좋을 이야기. 

 원폭은 왜 터지게 되었나.
 가깝지만 잘 모르는 일본
 무엇이 우리의 평화를 위협하는가.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지 경영
 히데요시의 임진왜란과 근대 일본 천황군의 조선정벌.
 타자에 의해, 주변국의 상황에 의해, 우리 눈의 백태에 의해,
 우리의 평화가 깨어져 왔음을 기억해야.


무엇이 우리의 평화를 위협하는가.

   히로시마 평화축제를 준비하며, 평화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평화란 무엇인가. 오늘의 평화는 영구적인 것인가. 평화는 어떻게 얻어질 수 있는가. 지속적인 평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지난 수 세기 동안 서구 제국주의와 자본의 힘이 지배하는 오늘의 상황에서, 산업화를 지탱하는 석유와 같은 자원을 얻기 위한 정치적·경제적 이해득실 관계에 따라, 무기와 같은 방위산업체들의 이익에 따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동의 평화가 무너져온 현실을 바라보며, 나는 오늘의 평화에 대해 다시금 아니 물을 수 없었다.

 

전쟁을 일으키는 자와, 전쟁으로 고통받는자

   동아시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한반도의 평화는 우리의 의지가 아닌, 그들의 의지에 의해 재편될 수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만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사이고 다카모리, 이토 히로부미와 같은 일본 내 우익인사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우리의 평화가 위협받을 수도 있으며, 미중대립이나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탐욕이 우리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불어 국내에서도 한반도의 평화를 가벼이 여길 뿐만이 아니라, 친일·친미의 인사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립, 과거 제국주의 일본의 폭력을 보여주는 위안부문제에 있어서도 날치기합의를 떠올린다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를 둘러싼 나라들에서 평화를 위협하는 세력들이 정권을 잡게 된다면, 우리의 평화는 더욱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사실 전쟁을 일으키는 극소수에 의해, 다수의 사람들은 원치도 않는 이유도 모를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일본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했다는 사실. 가해자는 일본천황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를 삼키려는 소수의 권력층이었지만, 그로인해 고통 받아야 했던 무고한 일본민중도 있다. 전쟁 중에 청소년 자살특공대 가미카제를 비롯하여, 전 국민 자살계획이었던 옥쇄작전까지. 제국주의적 욕망에 눈이 멀은 소수의 지도자에 의해, 희생되는 자국 시민들과 다른 세계 속 사람들. 권력을 쥔 특정 소수에 의해 결정되는 전쟁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삶을 생각해본다면, 그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원폭이 터진 이후, 조선인 원폭 피해자분들의 삶.

   원폭으로 인해 돌아가신 조선인 분들은 약 4만 명, 피폭자는 약 7만 명이라고 한다. 원폭 이후, 일본인은 조선인과 섞여 사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부족한 약품을 조선인과 나누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폭격 후에 조선 사람들이 모여 살던 조선인 원폭슬럼도, 복구과정에서 여러 번 철거되기도 했다. 살아남은 조선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히로시마 재건 현장에서 일해야 했고, 잔류 방사능에 노출을 감수하며 피폭지에서 일할 수밖에 없으셨다고 한다. 그 때 조선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고물을 취급하거나 막노동을 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시마 섬에 강제로 끌려가 노역했던 조선 사람들은 원폭이 터진 나가사키에 다시 끌려가서, 잔해를 치우는 작업을 방호목도 없이 맨몸으로 일을 하셨다고 한다. 피폭으로 인해 온 몸에 붉은 반점이 생기거나, 피가 분출되기도 하고 그렇게 시름 앓다가 다수의 분들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일본에서 원폭 피해를 입으신 분들은, 일본과 남한정부의 외면 속에서 살아야만 하셨다. 해방 이후 피폭된 몸으로 조국을 찾은 한국인 원폭피해자분들에 대한 남한 정부의 지원은 아무 것도 없었다고 한다.

 

고농도의 방사능에 피폭된 상태로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살아오셔야 했던, 원폭 피해자분들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5년 원폭 피해 2세대 1,226명을 대상으로 질병유병률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빈혈을 겪는 남성의 비율은 평균보다 88배 많고, 심근경색·협심증은 81배, 우울증은 65배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원폭 피해 2세 여성들도 유방양성종양은 64배, 천식은 23배 등 평균보다 높은 질병률”을 보이고 있다. “원폭 1세대의 평균연령은 80대인데, 이 분들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정부가 실태조사나 연구를 하고 일본과 미국에 한국인 피해문제를 제기해야 마땅하나, 정부가 피해자 조사나 추모사업 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아시아가 입은 고통
천황제를 지키고, 전쟁으로 인한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 더 지속된, 전쟁?

   오구마 에이지의 『일본이라는 나라?』에 따르면, 한반도에서의 조선인 강제연행으로 ‘광산, 군수공장 등’에서 열악한 조건으로 일한 사람이 최소 230만 명이며, 그 중에 많은 분들이 중노동으로 죽거나, 종군위안부로 끌려갔다고 한다. 중국 사망자 약 1천만 명(중국집계 2천만 명 이상)뿐만 아니라, 베트남 약 200만 명, 미얀마 약 5만 명, 필리핀 약 100만 명, 말레이시아 약 5만 명, 싱가포르 약 8만 명이 전쟁과 강제노역, 그 속에서 식량불충분으로 인한 기근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숫자로는 표현할 수 없을, 한 사람 한 사람의 수십만 고통의 시간들, 그 분노와 슬픔, 애환을 대체 어떻게 헤아릴 수 있단 말인가.

   오구마 에이지에 따르면, 일본은 전쟁의 말기에 ‘미국과 싸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한다. 전쟁이 더 길어졌던 이유는 일본이 항복조건을 유리하기 위해, 전쟁에 질 것을 알면서도 더욱 전쟁을 지연시켰다는 것이다.

   “원래 일본군이나 정부 고위층은 전쟁을 시작할 때부터 국력에서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미국과 싸워 이긴다는 예상 따위는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일본에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고, 항복 조건을 유리하게 하려고 국지전에서 이긴 다음, 항복 교섭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첫 번째는 ‘천황제는 지키는 것’ 두 번째는 ‘전범재판을 일본에서 진행하는 것’ (패전국으로 정부 고위층 사람들에 대한 처벌이 두려웠기 때문에) 그래서 지는 것이 뻔한 전쟁을 지연시켜, 엄청나게 많은 병사와 민간인이 죽는 상황을 초래했다.“ -오구마 에이지, <일본이라는 나라?>, p58

   승산이 없다고 알았던 시점에서 항복했더라면, 공습도 없고, 민간인의 사망자수도 소수에 불과했을 것이며, 굶어죽는 사람도 훨씬 적었을 것이라고, 오구마 에이지는 말한다.

   “1945년 2월, 전 수상 고노에 후미마로가 천황에게 항복교섭을 시작하자고 진언했지만, 천황은 ”한 번 더 전과를 올리지 않으면, 그런 이야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p59)고 말하면서 이를 거부. “(…) 이 시점에서 전쟁을 그만두었더라면, 3월의 도쿄 대공습도, 4월부터 시작된 오키나와 전투도, 8월의 원폭투하, 소련참전으로 비롯된 한반도 분단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전범 천황으로부터 시작된 이 전쟁이, 전범을 위해 더 지속되어야 했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분노하게 한다.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대체 누구를 위한 전쟁이고, 그 전쟁으로부터 누가 이익을 얻는지. 왜 다수의 사람들이 그 전쟁에 동원되어야 하고, 그로인해 고통 받아야만 하는지.

 

대체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는가.

   일본의 황국신민이라는 것은 무엇이었는가. 전쟁 중에 일본 청소년들은 ‘가미카제 특공대’라는 이름의 자살비행 특공대로 죽음을 마주해야 했고, 일본 황실은 일본인들에게 황국신민으로서 국민의 마지막 한 사람까지 끝까지 싸우다 죽으라는 ‘옥쇄’를 강요했다. 일본 진영이 무너질 때마다 민간인들에게까지 옥쇄를 강요했는데, 차마 자결하지 못하는 모친을 아들이 목졸라 죽였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1억국민 전원옥쇄!”라는 구호 아래 자기 동족을 담보로 하여, 맹목적으로 전쟁을 일으켰던 일본 황실. 그로인해 오키나와 전투에서는 총알받이로 죽는 일 외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집단자결을 했던 흔적이 많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수류탄, 쥐약, 청산가리, 농기구, 면도칼, 식칼 등으로, 미군에 점령당했을 때를 대비해 세뇌를 시킨 일본 황실. ‘와전옥쇄’ 하찮은 기와로 남기보다, 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져라는 그들의 공허한 구호는, 참으로 끔찍하다. 더불어 앞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일본황실이 ‘천황제를 지키고, 전범재판을 일본에서 진행’하기 위해, 항복교섭을 미루는 동안 전쟁에서 죽어간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천황을 비롯한 소수의 고위층 사람들을 위해서, 평범하게 살아가던 소시민이 불필요한 죽음까지 맞아야 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참담한 것이었다. 심지어 원폭으로 인한 전쟁의 종결 덕분에 일본인이 전원 옥쇄 하지 않아, 지금의 일본이 있을 수 있었다는 슬픈 이야기까지.

   “나는 철두철미한 반일작가다. 하지만 반일본인은 아니다. 그들도 인류의 한 사람이며, 군국주의의 희생자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미카제 특공대며 인간어뢰, 국민 전원의 옥쇄 계획, 원자탄의 희생도 그렇고, 젊은 생명들이 그 얼마나 전선에서 죽어갔습니까” -박경리, 『일본산고』

 

그렇다면 지금은 평화의 시대인가.
우리의 평화는 자본의 논리, 국가권력의 논리를 넘어설 수 있는가.

   지금 한반도의 평화는 영구적인가, 일시적인가. 현재 지구 전체로 보았을 때, 오늘의 지구는 평화로운가. 2018년 7월 15일에도 팔레스타인 소년 2명이 세상을 떠났다.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폭격으로 팔레스타인 소년 아미르 알님라(15세)와 로에이 쿠헤일(16세)이 사망했으며, 10명이 부상당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자본의 논리 아래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산업화에 필요한 석유를 얻기 위해 지금도 중동에서는 끊임없는 중동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중동에 위기가 올수록 석유가격이 급등하는 현상 아래,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강대국들의 중동침략은 노골화되어 있고, 세계 무역 거래에서 부패의 온상이라 불리는 무기거래에서의 리베이트를 챙기는 세력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전쟁도 서슴지 않는 이들의 존재와 전쟁으로부터 수혜자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반성하지 않는 일본, 그 뒤의 우익세력.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속에서 리영희는 반성하는 독일과,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대해 이야기한 바가 있다. 세계 2차대전 40주년이 되던 날, 독일의 폭 바이즈체커 대통령은 학살당한 500만에 대해 사과를 했다고 한다. 유태인과 공산주의자, 노동운동 지도자와 리버럴리스트, 점령지의 무명인들과 집시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사과를 했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우리의 선조가 한 짓을 모른 체 할 수 없다. 과거의 선택에 따라 오늘이 있기에, 우리들은 마땅히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독일의 이름으로 사죄하고 반성한다.”  이에 반해 일본은 패전 40주년 기념식이 열린 날, 패전 기념사에서 나카소네 수상은 “이제 전쟁은 끝난 지 40년이 되었다. 이로써 모든 과거는 청산되었다”고 선언했다. 일본이 역사를 단절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본 텔레비전의 채널을 돌리다보면 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드라마가 자주 나온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해자로서의 일본의 모습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반복하며 강조되는 것은 원자폭탄의 피해나 패전으로 인해 고통받는 모습들 뿐이다. 고통당하는 피해자의 모습을 괴로워하며 기억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문제가되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 배후에도 이 마조히즘적 원리가 숨어 있다. 자신들이 선조조차 마음대로 추모하지 못하는 희생자라는 피해의식이다.” -김정운, <일본열광>, p49

 

그렇다면 일본의 오늘은 어떠한가.

   평화헌법 9조를 고쳐 전쟁이 가능하도록 만든 일본세력이 있고, 그 중심에는 일본우익이 있다. 과거 ‘요시다 쇼인’을 모셨던 이토 히로부미부터 오늘날의 아베까지 말이다. 한국에서 위안부 동상을 세울 때마다 철거를 강요하는 외교적 압력이 들어오고, 오로지 천황을 위해 죽은 사람들을 기리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여전하며(위령의 목적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본받으라는 목적으로, 천황의 군대에 들어가면 목숨 아끼지 말고 싸워라는 의미가 강하다고 한다. 독일의 히틀러참배랑 마찬가지인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 당사자도 모르는 위안부 합의의 날치기 통과가 이어진다.

   소수의 탐욕적인 지도자의 결정과 방향으로 인해, 자국민을 비롯한 타국의 죄 없는 사람들의 무고한 희생이 이어져왔고, 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한다. 국민 모두가 전쟁을 원하지 않더라도, 국민이 대표로 뽑은 대표자(대통령, 국회의원 등)에게는 전쟁을 결정할 수 있다. 한 나라의 시민으로써, 우리는 어떤 지도자를 뽑아야 할지 더욱 신중히 생각하고 결정할 일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이해관계 아래 전쟁을 하려고 할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전쟁을 막기 위해 노력할테니 말이다. 정당이든 지도자든 과거를 들여다보면, 그가 어떤 이해관계 아래 움직이는지 헤아려볼 수 있을 것이다. 누가 평화를 깨트림으로써 이득을 얻는가. 누가 전쟁을 통해 이윤을 얻는가. 누가 계속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만드는가. 누가 진정한 평화를 위협하는가.

   ‘일본인은 나쁘다, 일본은 가해자’라는 섣부른 보편화, 일반화에 빠지기보다, 진정 평화를 위협하는 세력에게 분노의 화살이 향했으면 한다. 일본 사람은 다 나쁜 놈이라는 생각 역시 무분별한 폭력이다. 그 역시 우리가 평화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색안경일 것이다. 사람이라고 모두가 절대적으로 나쁘거나 착하거나 하지 않듯이, 한국 사람도, 일본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은 나빠, 반성 안 해 라는 생각의 획일화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일본에도 가해자와,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우리도 알지 않은가. 진정 분노가 향해야 할 곳에, 진정 우리의 평화를 위협하고 과거의 역사와 단절하지 않는 세력을 응시할 수 있었으면 한다.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관심이 필요하고, 경각심이 필요하며, 냉철한 현실인식도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무관심으로 냉소하다 평화를 위협하는 세력이 커져 진정 우리의 평화를 위협하는 날이 온다면, 고통을 받는 이는 결국 무관심 했던 우리 자신일 것이다.

 

나는 평화를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해볼 것인가.
무고하게 고통 받은 이들의 앞에서, 먼저 진실한 애도의 마음으로.

   나는 그 시작이 ‘일치’라고 생각한다. 마음의 일치. 국가폭력, 자본폭력, 제국주의 아래 고통받은 소시민들의 안타까운 죽음들 앞에서, 진정한 애도의 마음으로 슬픔의 마음으로 함께 하는 것이, 진정한 평화로 나아가는 그 출발점이라고 믿는다. 나는 이번 히로시마 평화축제를 참가하면서 가졌던 바람은, 평화축제에 참가하는 단 하루만이라도 진실한, 진솔한 애도의 마음으로, 원폭으로부터 고통받으신 분들을 기억하려는 것이었다. 나는 믿는다. 제국주의 소수의 전범자들로 인해 무고한 죽음과 고통을 마주해야 했던 분들 앞에서, 진실로 슬픔과 애도의 마음으로 함께 하는 것이, 진정한 평화로 나아가는 시작이라고. 윤동주는 마태복음 5장 3-12절을 빌려 팔복이라는 시詩를 썼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나는 바랐다. 평화를 희망하는 사람들과 함께, 먼저 고통 받으신 분들 앞에서 진솔한 애도의 마음으로 함께 하자고. 그것이 평화로 나아가는 것 출발점이어야 한다고. 이 평화축제의 참가가 평화의 시대로 나아가는, 그런 노력을 하는 시발점이 되기를 바랐다.

 

참고자료


[1] 오구마 에이지, <일본이라는 나라?>
[2] 박경리, <일본산고>
[3] 김정운, <일본열광
[4] 리영희,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기사
[1] http://solee.newsmin.co.kr/?p=283
[2]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20814000059
[3] http://www.jejusori.net/?mod=news&act=articleView&idxno=127046
[4] 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36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