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선입견에 갇혀 살아갈 것인가.
더 큰 세계를 뜨겁게, 나답게 누비어볼 것인가.

  바다는 드넓고 다양한 세계를 품고 있다. 하지만 넓은 바다를 누비는데는 크고 작은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상어에 의해 잃은 경험이 있는 니모아빠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거나, 나보다 더 힘쎈 물고기가 사는 세상에는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아빠는 몸으로 알아버린 것이다. 때문에 소중한 자식인 니모를 안전한 터전 안에서만 살도록 장려했다. 그러나 안전하기만 한 곳이 어디있겠으며, 아이를 안전한 곳에만 키우려한들 어디 그게 아비의 뜻대로만 되겠는가. 어느날 바다를 구경온 사람이 니모를 잡아가면서, 자신의 하나뿐인 자식 니모를 잃어버리게 된다. 

   자식을 잃어버린 아비는, 자식 니모를 찾아 큰 바다의 세계로 떠난다. 사랑은 언제나 우리의 숨은 용기를 이끌어내는 법이다. 니모 아빠는 그 여정 속에서 역시나 그동안 자신이 생각해왔던 위협적인 존재들, 자신에게 두려움을 주는 존재들을 만난다. 자신의 아내와 아이를 죽인 상어를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상어라고 무조건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어떤 상어 중에는 다른 물고기와 함께 공존하며 살기 위해 노력하는 상어도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라고 무조건 착하거나 나쁘거나 하지 않듯이 말이다. 니모아빠는 위험한 해파리떼 속에서 자신의 친구 도리를 구해내기도 하고, 선한 고래와 펠리칸의 입 안에서 죽지 않을 수 있다는 경험도 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로부터 자식 니모를 찾는데 도움까지 받으니, 그로서는 놀라움의 연속이었으리라. 자신이 믿어왔던 위험과 두려움의 세계가 무너지는 순간들이었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어리게만 생각했던 니모가, 침착하고 용감하게 어선 그물에 잡힌 친구 ‘도리’를 구해낸다. 이를 본 니모아빠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흔히 부모들은 자식걱정에 자식의 일을 자신이 다해버리곤 하지만, 이는 자식의 삶을 독재하는 일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잘 성장할 수 있었다면, 자식도 스스로 할 수 있는 법이다. 다만 아이들이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도록 사랑으로 묵묵히 바라보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한데, 성질급한 부모들이 자식이 경험할 수 있는 일의 기회와 시간을 독재해버리고 만다. 니모의 이야기는 그런 세상의 부모들에게 자식을 향한 믿음의 소중함을 알려준다. 그는 그동안 얼마나 수많은 선입견 속에서, 자신을 두려움 속에 가두며 살았던가. 니모를 찾으러가는 아빠의 여정은 자신이 과거의 슬픈 경험에서 학습한 공포와 두려움을 극복해나가는 순간이자, 자신안의 선견을 무너뜨려가는 순간들이기도 했다

 

   두려움이 많았던 니모의 아빠. 그는 나의 모습을 닮았다. 나는 그의 모습 속에서, 나의 두 가지 모습을 바라본다. 세상은 위험하며 몸을 사려야 한다는 두려움에 길들여진 나의 모습과, 나보다 어린 동생과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세상은 험하다며 내가 아는 삶의 방식만을 주입하는 모습 말이다. 

   나는 그동안 나만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왔다기보다, 타자와 사회가 생각하는 삶의 반경 안에서 살아왔다. 나만의 다른 삶을 살기보다, 다른 이와 같은 사회가 주입해온 삶을 살고 있었다. 홀로 다른 삶을 산다는 두려움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을까. 나는 여전히 다른 이의 시선 속에서 살고 있었다. 자기만의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은 ‘남들과는 다른 삶’을 걸어간다는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하지만 니모의 아빠가 과거의 경험에서 두려움을 학습했던 것처럼, 나는 사회 속에서 두려움을 학습했다. 어른들과 사회 속의 분위기에 따라 자연스레 대학은 가야만 하는 것이었고, 언제 취직하고 언제 결혼해야 한다는 식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주입받은 탓에, 그로부터의 이탈을 생각지도 못했고, 쉬이 내딛지도 못했다.  

   나는 함께 살아가는 다른 타자에 대해서도 내 삶의 방식을 강요할 때가 많았다. 그들 스스로도 자신만의 방식과 삶을 충분히 걸어나갈 수 있음에도, 나는 여전히 내가 깨달은 나만의 삶의 방식을 타자에게 강요할 때가 많았다. 그 일들이 그들만의 경험이 될 수 있도록 그들 스스로가 해낼 때까지, 기다려주는 일이 필요한데도 나는 조급했다. 니모의 아빠가 니모에게 자신이 겪은 위험에 대한 두려움을 주입하고 강요하는 것처럼, 나는 나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답이 아니라, 질문이 필요한 것임에도 나는 늘 나의 답을 말했다.  

 

   니모는 내게 묻는다. 두려움에 몸을 움츠리고 가만히 있을 것인가, 호기심과 용기로 가득찬 자신처럼 세상을 뜨겁게 누비어 볼 것인가. 다시 한 번 기억할 것은, 몸을 아무리 움츠리고 있어도 때때로 못된 상어가 나타나기도 한다는 사실. 지금 이 곳이 안전한 곳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넓은 삶이라는 바다에 몸을 맡겨볼 수는 없을까. 때때로 인간은 삶을 살아가면서 타자로부터 받은 상처나 거절의 기억에 갇혀 타자를 경계하고 자주 몸을 사리고 조심하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우리를 도와줄 사람들이 많이 있기도 한 법이다. 

   니모아빠는 말한다. 머리로만 알던 바다거북을 직접 만나, 나이를 물어보았노라고. 세간에는 바다거북의 수명이 백년으로 알려져 있지만, 자신이 만난 젊은 바다 거북의 나이는 백오십년이었노라고. 자신의 가족을 해친 상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상어도 있었노라고. 해파리떼도 막상 부딪혀보니 극복할 수 있었고, 바다라는 드넓은 세계 안에는 ‘기억력은 삼초라도 자신과 함께 위험을 감내해주는 도리라는 친구’도 있었고, 길을 잃었을 때 길을 찾도록 도와주는 현명한 거북친구도, 자식을 찾는데 도움을 줬던 착한 고래, 착한 펠리칸도 있었노라고.